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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우리는 왜 레트로 게임에 열광하는 것일까?

by 수빡돈 2020. 9. 4.

우리는 왜 레트로 게임에 열광하는 것일까?

 

 

 

  레트로라는 말은 영어 단어 'retro'를 말하는 것인데, 사전적 의미로는 '복고풍의, 재유행의'라는 뜻이다. 옛날에 인기 있었던 게임이든 영화든, 어떠한 작품들이 최근에 다시 유행하는 것이 레트로인 것이다. 사실 레트로 자체는 사회 전반적인 부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이 글에서는 레트로 게임에 대해서만 조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왜 레트로 게임에 열광하는 것일까?

 

  본격적으로 레트로 게임을 논하기 전에 필자의 나이를 먼저 밝혀야 할 것 같다. 필자는 83년생, 한국 나이로 38이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게임기를 접했던 것은 부모님께서 사주셨던 삼성 겜보이(세가 마스터 시스템)였는데, 그때가 1989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때가 내 나이 7살쯤이었나? 저녁에 집에 들어오시는 부모님 손에 들려있던 겜보이 박스가 내 머릿속에 사진처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때는 정말이지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고 날아갈 듯 기뻤다.

 

  한동안 정신없이 즐겼던 삼성 겜보이지만,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오락실을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당시 유행하던 스트리트 파이터 2 같은 훨씬 더 재미있고 좋은 그래픽의 게임들을 접하고는 삼성 겜보이에 대한 내 애정이 급격하게 식어버렸다. 오래된 고물 게임기, 그것이 그때 당시 삼성 겜보이를 향한 내 마음이었다. 지금은 엄청난 고가가 되어버린 삼성 겜보이지만, 나의 모든 관심은 오로지 오락실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들에 넘어가 있었고, 꽤 오랫동안 구석에 처박혀 방치되고 있었던 나의 삼성 겜보이는 엄마의 친구네 아들의 손으로 그렇게 떠나갔다. 엄마가 삼성 겜보이를 친구네에 주시기 전에 줘도 괜찮은지 나한테 물어봤었다. 겜보이에 조금의 애정도 남아있지 않았던 나는 쿨하게 그러라고 했고, 인생을 논할 때 후회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필자지만(그것이 실패든, 실수든, 인생에서 후회를 유발하는 어떠한 행동도 결국은 경험으로 녹아들어 어떤 식으로든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만), 그때 그 결정은 후회한다. 너무 후회한다. 다시 구하고 싶지만 너무 비싸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일판으로 소장하고 있는, 삼성 겜보이로 가장 재밌게 즐겼던 게임 두 개. 시노비와 트라이 포메이션

 

 

 

 

 

 

  그렇게 한동안은 오락실을 드나들며 주로 격투 게임에 반쯤 미쳐 살았다. 그러던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친구의 친구 집에 우연히 놀러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세가새턴'이라는 게임기를 처음으로 보게 된다. 단순히 그래픽이 좋은 최신 게임기 그 이전에 무엇보다 충격을 받았던 것은 '킹 오브 파이터 96'을, 오락실과 똑같은 모습으로 집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충격적인 경험 이후로 한동안은 새턴에 꽂혀 살았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수업시간에도, 잠들기 전에도, 새턴 생각밖에 안 했었던 것 같다. 새턴에 미쳐 살았지만 친구에게 잠깐 빌려서 게임 몇 개를 엔딩 본 것 이외에는 끝끝내 학창 시절에는 새턴을 손에 넣지 못했다(사실 이런 이유로 지금 새턴을 많이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 같은 느낌?). 하지만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새턴이 점점 '플레이 스테이션'에 밀리기 시작했고, 플스의 압도적인 성공에 나 역시도 자연스럽게 새턴에서 플스로 관심이 옮겨가게 되었다. 결국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 나는 새턴이 아닌 플스를 손에 넣었다. 플스를 처음 가지게 된 그 날 역시 부모님께서 겜보이를 사주셨던 그 날처럼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느꼈던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행복한 날이었다.

 

 

아직도 방 한구석에서 즐거움을 주고 있는 새턴과 플스

 

 

 

 

 

 

  레트로 게임 시장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닌텐도의 슈퍼패미콤이나 세가의 메가드라이브 같은 16비트 게임기들은 필자의 인생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게임기였다. 어린 나이이기도 했고 게임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와 지식이 부족했었기 때문에 그때는 그런 게임기들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새턴이나 플스 같은 32비트 게임기들을 접하고 나서야 우연히 친구의 메가드라이브를 플레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이미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나는 엄마 친구 아들에게 줘버린 삼성 겜보이처럼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그래서 필자에게 레트로 게임이란 약간의 8비트 게임과 32비트 게임이 주를 이룬다. 이제 곧 플스5의 발매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플스 2 게임도 레트로 게임으로 본다고 하면 플스 2도 레트로에 포함할 수 있을 것 같다. 레트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인터넷 카페 '구닥동'과 같은 곳에서는 "레트로 게임의 기준이 어디까지인가?"라는 이야기를 주제로 여러 가지 의견들을 내놓는다. 진정한 레트로는 메가드라이브와 슈퍼패미콤 같은 팩 게임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플스 1이나 새턴까지를 레트로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2D와 3D를 가지고 레트로를 구별하는 사람들도 있다. 각자가 나름대로의 주장을 펼쳐나가지만, 결국 레트로는 개개인의 추억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정답은 없다. 어린 시절 재미있게 즐겼고 추억이 서려있는 게임이라고 한다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레트로인 것이다. 필자가 유독 플스 1과 새턴들에 집착하는 이유도 개인의 경험에 기인한다. 필자에게는, 중학교 시절 밤잠 아껴가며 플레이했던 RPG 게임 '루나 실버스타 스토리'가 모두에게 대작이라 인정받은 '파이널 판타지 6'보다 더 대작인 것이다.

 

 

그래도 GBA 버전으로 소장하고 있는 파판6. 추억이 담긴 게임이라기 보다는 아직 플레이 하지 않은 신작 게임의 느낌으로 소장중이다.

 

 

 

 

 

 

  어린 사람은 미래를 동경하고, 젊은 사람은 현재에 충실하며, 나이 든 사람은 과거를 돌아보며 산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과거를 즐기는 행위인 레트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미 나이가 꽤 들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슬프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도 그렇게 각자의 추억속 레트로 게임을 수집하고 플레이하면서 옛날을 떠올리고 즐거워하는 것을 통해 현재의 삶에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면, 그래서 지치지 않고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면, 나이를 떠나서 그 자체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레트로 게임이 가지는 진정한 힘이자 우리가 추억을 찾아 레트로 게임에 열광하고 즐기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